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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철학과 교육사

철학과 철학하는 태도

by GRIMI일상 2023.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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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철학]이라는 말은 유럽 말 philosophy 또는 Prilosophie를 옮겨 놓은 것으로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피타고라스(Pythiagoras)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유럽 말들은 그리스 말 '필로소피아'(philosoplhia)에서 유래하였습니다. ' 필로소피아라는 말은 다시 '필로스'(philos ; 사랑)와 '소피아(sophia ; 지혜)라는 두 말이 합쳐져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필로소피아'는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뜻이 되겠죠.

 


  그런데 '지혜'에 초점을 맞추느냐 아니면 '사랑'에 초점을 맞추느냐 따라서 '필로소피아'의 뜻이 달라집니다. 대체로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은 '사랑'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그들에게 그것은 '사랑으로의 철학'이라고 볼 수 있겠죠.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보다 나은 지혜'를 향하여 항상 그리워하고 품임 없이 노력하는 것, 이것이 곧 사람의 참된 모습이요, 또한 이것이 철학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지혜'에 무게를 두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그에게 철학이란 '지혜로서의 철학'이었습니다. 그에 의하면, 절학은 지혜의 탐구라기보다 오히려 '탐구된 지혜, 즉 '객관적 지식의 제계'입니다. 이 경우 철학은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과학(science)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일철학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철학이 일반적으로 과학을 뜻하므로 다른 모든 과학의 근본원리를 탐구하는 참된 철학을 형이상학 혹은 제일철학이라고 불렸다. 근세에 이르기까지도 자연과학도 철학이라고 불리었던 이유다. 뉴턴(Newton)이 물리학에 관한 그의 저서에 '자연학'(philosophia naturali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와 같은 철학의 두 가지 뜻은 철학사 전체를 통하여 묘하게 얽혀 있습니다. 사랑으로서의 철학이 주체성을 존중하는 데 비해, 지혜로서의 철학은 객관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소피아'는 지식(episteme ; 과학)과 같은 뜻이었기 때문에 지혜로서의 철학은 사실상 지식으로서의 철학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지식으로서의 철학은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이것을 배우고 이해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랑으로서의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활동으로서 사람들을 탐구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놀라운 매력과 마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혜를 사랑한다는 것은 보편적 현상에 대해 진지하게 사고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렇게 사물에 대해 진지하게 사고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철학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봅니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철학하는 것'(doing philosophy)은 무엇이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파헤치고 깊이 파고 들어가서 그것의 참된 모습이 무엇인가를 인식하려고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철학하는 것'은 단순히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는 것, 또는 우리의 생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칸트(I, Kant)도 "내가 진정으로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철학(지식의 체계로서의 철학)이 아니라 '철학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지혜를 사랑하는 활동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상식에 따라 살고 문화적 전통의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는 보통 사람들을 '안 사람'이라고 한다면, 철학하는 사람, 즉 철학자는 상식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뿌리깊이 파헤쳐서 오류를 찾아내고 제거하는 '바깥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철학을 하는 사람은 아무것이나 분별없이 참이라고 받아들이지 않고, 어떤 것이 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결코 버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럼 교육철학에 대해 잠시 살펴보려고 한다. 여느 말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다른 의미를 갖고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교육철학'이라는 말의 의미가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도 않기도 하고  또한 결코 고정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말의 의미뿐만 아니라 모든 대상이나 현상의 의미란 인간에 의해 언제나 새롭게 부여되고 수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교육철학을 한 가지로 정의하는 일은 애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교육철학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맥락을 중심으로 구분해 본다면 크게 [교육관으로서의 교육철학]과 [학문으로서의 교육철학]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그다음 포스트에서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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